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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튕겨나온 뒤, 차갑게 보자면 계약기간 만료일 뿐인데, 튕겨져 나왔다는 느낌이다, 어쨌든.
홀로 이곳 저곳을 걷고 싶었다. 익숙한 곳이 아닌 곳에서 익숙한 나를 버리고 새로워지고 싶었다.
늘 여행을 꿈꾸었으나 떠난 적 없어서 이번에야 말로 떠나고 싶었다.
한 달을 계획했다. 무리였다. 집에 갔다온 주, 남은 삼일을 가기로 했다.
어디로 가지?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이 경주였다.
경주는 고등학생 때 수학여행으로 가본 적 있으나 기억에 남지 않아 내겐 낯선 곳이다.
여행을 다녔던 사람들은 봄이면 경주 이야기를 했다.
그래서였을까? 신라의 수도, 이제는 작은 중소도시인 경주에서 처용처럼 걷고 싶었다.
경주로 일단 발길을 잡아놓자 이어 떠오른 곳이 포항이다.
<네 멋대로 해라>의 나영이 혼자 떠난 곳. 큰 손이 바다에서 나와 해를 띄우는 해맞이 공원.
경상도 사투리의 살가움과 무뚝뚝함을 동시에 듣자. 그렇게 갈 곳을 정했다.
날은 흐렸다. 비가 올 것이라고 했다.
포항과 경주로 목적지를 잡아 놓았을 뿐, 구체적으로 어디에 갈 지는, 도착지에 붙은 지도판을 보고 결정하기로 했다.
가볍게. 짐은 가볍게. 걸음이 가벼울 수 있도록.
가방에 옷 한 벌, 속옷과 양말 한 벌 씩, 우비와 랜턴, 세면도구, 책 한 권("대한민국 걷기 좋은 길"),
노트 하나를 넣었다.
새로 산 카메라 a500과 재빠르게 찍을 수 있는 똑딱이, 삼성 VLUU를 챙겼다.
카메라가 무거웠으나 사진을 제대로 찍어보자는 욕심에 메고 지고 다니기로 한다.
포항까지는 네시간 반이다. 1시가 넘어서 버스를 탔다.
음악을 듣고, 책을 읽고, 그림을 그리며 간다. 날은 흐리다. 하지만 버스는 미끄러지듯 달린다.
포항에 도착하니 여섯시쯤이다. 봄은 봄인가 아직 해가 남아있다.
포항은 연기와 구름의 도시였다. 마침 흐린 날이 포스코의 넓고 짙은 연기와 한 몸이었다.
무채색의 사진이 잘 어울릴 도시다.
고속버스터미널에는 관광지도가 없었다.
"포항역으로 가보이소."
포항역의 관광안내소는 닫혀있었다.
다만 포항관광지도가 관광안내소 옆에 큰 간판으로 서 있었는데
가려고 했던 내연산과 호미곶은 포항역에서 둘 다 멀었으며 그 둘 마저도 멀리 떨어져 있었다.
....밤이 늦었으니 호미곶에서 바닷소리를 들으며 자자.
주위를 둘러보니 마스크를 쓴 할아버지 한 분이 자전거를 세워놓고 하늘을 본다.
"바람 쐬러 나온기지 뭐."
할아버지는 젊은 여행객을 끌고 이리 저리 다니며 버스길을 찾아주셨다.
"여긴 호미곶 가는 뻐쓰가 없네. 저로 가보라."
터미널에서 역까지 걸어온 길을 되짚어 갔다.
배가 고팠다.
작은 분식집은 바처럼, 기차역 털보 국수집처럼, 긴 바 위에 한 명씩 앉아서 먹게 된,
4인용 식탁이 가끔 떨어져 있는 식당이었다. 떡만두국을 먹었다.
김치는 칼칼하고 매웠으며 떡과 만두는 푸짐했고 국물은 깊고 뜨거웠다.
혼자 사는 남성들이 단골인지 가게는 온통 추리링 바람에 마실 나온 사내들 뿐이었다.
살갑고 따스한 포항 사투리가 가득한 식당.
먹고 나와 다시 버스길을 찾다 노부부에게 길을 물으니
"쩌로 무단횡단 해 가면 있어. 무단횡단 천천히 조심히 해."라며 웃는다.
죽도시장 앞에서 200번 버스를 타고 호미곶을 찾아간다.
한 번에 가는 건 없고 구룡포에서 갈아타야 간다.
200번은 포항시내를 한 바퀴 돌고 포스코와 포항공항을 지나 31번 도로를 타고 구룡포로 간다.
구룡포에서 호미곶까지는 바닷가 마을을 옆에 끼고
샛길이나 옆길도 없이 집 앞에 바짝 붙어 가는 구불길이다.
백암에서 죽산가는 10-1처럼 여기 저기 다 서고
기사와 승객이 서로 알고 지내는 그런 버스다.
"호미곶 무슨 공원...멀었나요?"
다 왔다고, 다음이라고 기사와 승객이 모두 귀띔을 해준다.
버스에서 내리니 그제야 바닷소리와 냄새가 몸을 만진다.
심호흡을 하니 바닷바람이 코에서 발끝으로 밀려 들고 또 밀려난다.
환하게 조명을 받으며 홀로 서 있는 풍차!
그 앞에 작게 붙어 있는 집들.
-어디에서 묵을까?
골목과 골목을 돌며 숙소를 찾는다.
여행 일정을 자세히 짤 필요가 있어서 인터넷이 되는 모텔을 찾았다.
마침 바다 바로 앞에 있는 모텔이 보인다.
모텔로 가는 골목 골목으로 바닷바람이 들어와 밀려 나가고
바람을 흘려 보내는 골목의 집들은 모두 대문이 없었다.
낡고 넉넉한 집들. 어디선가 외할머니가 주무시고 계실 것 같은.
문이 없는 집들. 개 없어 조용한 골목. 파도 소리가 들리는 숙소.
맥주 한 캔 마시며 일정을 짠다.
내일 일출은 06: 45. 아침에 호미곶을 보고, 아침 밥을 여기서 먹자. 그리고 내연산에 가서 보경사 트래킹을 하면 되겠다. 오후엔 바로 경주로 넘어가서 경주 야경을 봐야지.
소희와 오랜만에 원광조 선생님과 통화를 하며, 내일 있을 길들을 위해 눈을 붙였다.
하지만,
바람은 짠내와 더불어 방문을 끊임없이 흔들었다.
홀로 누워 자는 일이 낯선 곳에서는 더 쓸슬하고 허전했다.
기어코 잠은 오지 않았다.
창을 열면 건물의 골 사이로 파고드는 바람이 크게 울며 지나간다.
海風.
티비를 켰다. 도시와 이어진 것 같다. 덜 외로운 느낌이다.
혼자 잠들기 싫어 밤새 티비를 돌리다.
홀로 있는 시간을 편안하고 여유롭게 견디는 일을 배우지 못했음을 깨닫는다.
티비 소리를 줄이고 불을 껐으나 다시 켠다.
밤-바다-바람 소리....
밤의 소리에, 해풍의 넋나간 소리에 결국 졌다.
밤의 소리가 옅어지면, 밤이 제 소리를 먼동에게 넘겨주면 잠들기로 했다.
나는 약한 사람이구나, 깨닫다.
잠이 든 것은 새벽 5시가 넘어서다.
먼 옛날, 촛불도 켜기 힘들었을 시절에
밤늦게까지 잠을 못 이루던 사람이
이렇게 바닷소리에 마음이 심란해질 새벽이면
어여쁜 처녀와 사랑을 나누었으나 깨고보니 꿈이라는 이야기며
알고보니 처녀귀신이었다는 이야기, '몽자류 소설'을 지어낼 법도 하다.
온통 흔들리고 울리는 밤이었다.
<첫째날 끌.>
*지출
성남-포항 버스비: 29.400
터미널에서 귤과 껌: 3.000
떡만두국: 3.000
호미곶까지 버스비: 1500X2=3.000
해수장모텔:40.000
맥주와 안주:10.000
총: 88.400원
역시 차비와 숙소비가 제일.
홀로 이곳 저곳을 걷고 싶었다. 익숙한 곳이 아닌 곳에서 익숙한 나를 버리고 새로워지고 싶었다.
늘 여행을 꿈꾸었으나 떠난 적 없어서 이번에야 말로 떠나고 싶었다.
한 달을 계획했다. 무리였다. 집에 갔다온 주, 남은 삼일을 가기로 했다.
어디로 가지?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이 경주였다.
경주는 고등학생 때 수학여행으로 가본 적 있으나 기억에 남지 않아 내겐 낯선 곳이다.
여행을 다녔던 사람들은 봄이면 경주 이야기를 했다.
그래서였을까? 신라의 수도, 이제는 작은 중소도시인 경주에서 처용처럼 걷고 싶었다.
경주로 일단 발길을 잡아놓자 이어 떠오른 곳이 포항이다.
<네 멋대로 해라>의 나영이 혼자 떠난 곳. 큰 손이 바다에서 나와 해를 띄우는 해맞이 공원.
경상도 사투리의 살가움과 무뚝뚝함을 동시에 듣자. 그렇게 갈 곳을 정했다.
날은 흐렸다. 비가 올 것이라고 했다.
포항과 경주로 목적지를 잡아 놓았을 뿐, 구체적으로 어디에 갈 지는, 도착지에 붙은 지도판을 보고 결정하기로 했다.
가볍게. 짐은 가볍게. 걸음이 가벼울 수 있도록.
가방에 옷 한 벌, 속옷과 양말 한 벌 씩, 우비와 랜턴, 세면도구, 책 한 권("대한민국 걷기 좋은 길"),
노트 하나를 넣었다.
새로 산 카메라 a500과 재빠르게 찍을 수 있는 똑딱이, 삼성 VLUU를 챙겼다.
카메라가 무거웠으나 사진을 제대로 찍어보자는 욕심에 메고 지고 다니기로 한다.
포항까지는 네시간 반이다. 1시가 넘어서 버스를 탔다.
음악을 듣고, 책을 읽고, 그림을 그리며 간다. 날은 흐리다. 하지만 버스는 미끄러지듯 달린다.
첫컷이다. 우체통을 흐리고 산에 초점을 두려고 했다.
포항에 도착하니 여섯시쯤이다. 봄은 봄인가 아직 해가 남아있다.
포항은 연기와 구름의 도시였다. 마침 흐린 날이 포스코의 넓고 짙은 연기와 한 몸이었다.
무채색의 사진이 잘 어울릴 도시다.
고속버스터미널에는 관광지도가 없었다.
"포항역으로 가보이소."
포항역의 관광안내소는 닫혀있었다.
다만 포항관광지도가 관광안내소 옆에 큰 간판으로 서 있었는데
가려고 했던 내연산과 호미곶은 포항역에서 둘 다 멀었으며 그 둘 마저도 멀리 떨어져 있었다.
....밤이 늦었으니 호미곶에서 바닷소리를 들으며 자자.
주위를 둘러보니 마스크를 쓴 할아버지 한 분이 자전거를 세워놓고 하늘을 본다.
"바람 쐬러 나온기지 뭐."
할아버지는 젊은 여행객을 끌고 이리 저리 다니며 버스길을 찾아주셨다.
"여긴 호미곶 가는 뻐쓰가 없네. 저로 가보라."
똑딱이카메라는 주머니에 넣고 다니며 대게 이럴 때 썼다.
터미널에서 역까지 걸어온 길을 되짚어 갔다.
배가 고팠다.
작은 분식집은 바처럼, 기차역 털보 국수집처럼, 긴 바 위에 한 명씩 앉아서 먹게 된,
4인용 식탁이 가끔 떨어져 있는 식당이었다. 떡만두국을 먹었다.
김치는 칼칼하고 매웠으며 떡과 만두는 푸짐했고 국물은 깊고 뜨거웠다.
혼자 사는 남성들이 단골인지 가게는 온통 추리링 바람에 마실 나온 사내들 뿐이었다.
살갑고 따스한 포항 사투리가 가득한 식당.
먹고 나와 다시 버스길을 찾다 노부부에게 길을 물으니
"쩌로 무단횡단 해 가면 있어. 무단횡단 천천히 조심히 해."라며 웃는다.
죽도시장 앞에서 200번 버스를 타고 호미곶을 찾아간다.
한 번에 가는 건 없고 구룡포에서 갈아타야 간다.
200번은 포항시내를 한 바퀴 돌고 포스코와 포항공항을 지나 31번 도로를 타고 구룡포로 간다.
구룡포에서 호미곶까지는 바닷가 마을을 옆에 끼고
샛길이나 옆길도 없이 집 앞에 바짝 붙어 가는 구불길이다.
백암에서 죽산가는 10-1처럼 여기 저기 다 서고
기사와 승객이 서로 알고 지내는 그런 버스다.
"호미곶 무슨 공원...멀었나요?"
다 왔다고, 다음이라고 기사와 승객이 모두 귀띔을 해준다.
버스에서 내리니 그제야 바닷소리와 냄새가 몸을 만진다.
심호흡을 하니 바닷바람이 코에서 발끝으로 밀려 들고 또 밀려난다.
환하게 조명을 받으며 홀로 서 있는 풍차!
그 앞에 작게 붙어 있는 집들.
-어디에서 묵을까?
골목과 골목을 돌며 숙소를 찾는다.
여행 일정을 자세히 짤 필요가 있어서 인터넷이 되는 모텔을 찾았다.
마침 바다 바로 앞에 있는 모텔이 보인다.
모텔로 가는 골목 골목으로 바닷바람이 들어와 밀려 나가고
바람을 흘려 보내는 골목의 집들은 모두 대문이 없었다.
낡고 넉넉한 집들. 어디선가 외할머니가 주무시고 계실 것 같은.
문이 없는 집들. 개 없어 조용한 골목. 파도 소리가 들리는 숙소.
숙소 바로 앞에서 볼 수 있는 밤바다
숙소는 가격에 비해 낡고 허름했다. 바람은 끊임없이 창을 흔들었다.
맥주 한 캔 마시며 일정을 짠다.
내일 일출은 06: 45. 아침에 호미곶을 보고, 아침 밥을 여기서 먹자. 그리고 내연산에 가서 보경사 트래킹을 하면 되겠다. 오후엔 바로 경주로 넘어가서 경주 야경을 봐야지.
소희와 오랜만에 원광조 선생님과 통화를 하며, 내일 있을 길들을 위해 눈을 붙였다.
하지만,
바람은 짠내와 더불어 방문을 끊임없이 흔들었다.
홀로 누워 자는 일이 낯선 곳에서는 더 쓸슬하고 허전했다.
기어코 잠은 오지 않았다.
창을 열면 건물의 골 사이로 파고드는 바람이 크게 울며 지나간다.
海風.
티비를 켰다. 도시와 이어진 것 같다. 덜 외로운 느낌이다.
혼자 잠들기 싫어 밤새 티비를 돌리다.
홀로 있는 시간을 편안하고 여유롭게 견디는 일을 배우지 못했음을 깨닫는다.
티비 소리를 줄이고 불을 껐으나 다시 켠다.
밤-바다-바람 소리....
밤의 소리에, 해풍의 넋나간 소리에 결국 졌다.
밤의 소리가 옅어지면, 밤이 제 소리를 먼동에게 넘겨주면 잠들기로 했다.
나는 약한 사람이구나, 깨닫다.
잠이 든 것은 새벽 5시가 넘어서다.
먼 옛날, 촛불도 켜기 힘들었을 시절에
밤늦게까지 잠을 못 이루던 사람이
이렇게 바닷소리에 마음이 심란해질 새벽이면
어여쁜 처녀와 사랑을 나누었으나 깨고보니 꿈이라는 이야기며
알고보니 처녀귀신이었다는 이야기, '몽자류 소설'을 지어낼 법도 하다.
온통 흔들리고 울리는 밤이었다.
<첫째날 끌.>
*지출
성남-포항 버스비: 29.400
터미널에서 귤과 껌: 3.000
떡만두국: 3.000
호미곶까지 버스비: 1500X2=3.000
해수장모텔:40.000
맥주와 안주:10.000
총: 88.400원
역시 차비와 숙소비가 제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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