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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의 글이다. 그리고 연말이다. 오늘이 벌써 26일. 서른 둘의 2010도 이제 끝났다.
겨울방학하면 며칠 쉬다가 도서관 근무를 이어서 할 줄 알았는데
장원당-공부 잘 하고 말 잘 듣는 학생들이 칸막이 책상에서 조용히 공부할 수 있게
만들어놓은 학교 열람실 시설-에서 일하는 분 중 한 분이 그만두신 뒤 대신 할 사람을 못 구했다며
대신 일 해달라고 하셔서 장원당 근무를 시작하게 되었다.
격일-정확한 격일은 아니고 이틀에 한 번 꼴로 쉬기도 하고, 이틀을 내리 쉬기도 하는 평균 격일-근무에 하루 노동시간이 13시간 정도 된다. 일은 어렵지 않다. 공부하러 온 아이들 챙기고, 조용히 시키고, 공간 관리만 하면 되는 일. 셔터맨 같이.
아침 아홉시까지 문을 열어야 해서 일곱시 조금 넘어 나왔다.
겨울, 새벽이었다. 달이 하얗게 뜨고 버스가 드문드문 다니는.
입김이 숨을 타고 퍼지고, 따뜻한 커피 한 모금에 담배가 절실한.
적당히 추운 버스에서 졸다 깨다 하게 되는 겨울, 새벽.
그러고보니 새벽 공기를 잊고 산 지 오래 되었구나.
일요일엔 차가 많지 않아 여덟시 조금 넘어 압구정 역에 도착.
일요일 아침 한산한 거리도 좋다. 이제 막 밤이 물러간 아침 거리.
처음 장원당을 맡게 되었을 때 마음이 좋지 않았다.
이를테면 겨울 방학의 1~2달을 나는 압구정고등학교 도서관과 이별하는 시간
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북스타트도 정리하고, 도서관 청소도 해놓고, 아이들이
놀러오면 맞아서 이야기도 나누고....일 시키는 사람이 보기엔 별 것 아닌 일들이겠지만
나에겐 소중한 시간일 터.
그런 이별의 시간 없이 바로 도서관 문 걸어 잠그고 장원당에 '처박혀'야 하는 게 마음에 걸렸다.
주말에도 근무해야 한다는 것, 아침 아홉시까지 나와 밤 열시나 되어야 돌아간다는 것(원래는
열한시 반까지였다.)도 썩 내키지 않았으며
이미 결정을 내리고 내게 협의를 요청한 대화 방식과
한 발짝 더 뒤로 물러난 근무 조건의 악화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이 일을 맡기가 꺼려졌던 건
이 일이 <노인의 일>이란 생각 때문이었다.
호진샘이 들었다면 "아직 배가 덜 고팠구만."하고 껄껄 웃었겠지만
별로 하는 일 없이 시간이 지나면 월급이 나오는
실제로 퇴직한 어르신과 함께 일하는
<노인의 일>을 하기엔 내가 아직 젊지 않나, 하는 생각이 스스로를 괴롭힌 것도 사실이다.
그러고보면 어디에나 갈수록 조건이 나빠지는 일들이 있고
그 일들은 대개 노인이나 이주노동자와 같이 '사회 하층 계급'으로 분류되는 측이 맡는다.
학교에서 교사들은 스스로의 노동시간과 근무조건에는 민감하면서
학교의 변두리 일들을 맡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무관심이다.
정문을 지키고 장원당을 지키는 '지키미'분들이나
학교를 청소하고 식당을 청소하는 미화원, 학교 시설을 지키는 '열쇠 할아버지는
휴일 없고 밤낮없이 일하는 경우가 많다.
듣기로 정문 지키미를 하시는 분(요즘은 높은 자리는 다 영어로 직위를 말하면서
낮은 자리는 친절하게도 한글 이름을 갖다붙이는 것 같다.)은 방학도 없이
하루에 6시간 일하시면서 70만원 정도 받는다고 한다.
이우학교에 혁신학교 연수차 방문한 압구정고등학교 선생님들이
교사들의 근무시간과 월급을 따져
"결국은 교사들 쥐어짜서 만든 학교네."라고 맥락 없는 결론을 내리고,
아무리 좋은 학교라도 교사들의 기본 노동 환경을 보장하지 못하면 무의미하다고 이야기하면서
학교의 다른 노동자들의 권리와 환경에 대해 무관심한 건 모순이다.
나 역시 도서관 근무로 채용되었지만 내가 속한 연구부에 큰 일이 있을 때마다,
혹은 선생님들이 개인적으로 도움을 구하실 때, 적지 않은 일들을 맡아서 해왔다.
물론 압구정고등학교 선생님들에게 배려와 존중을 받으며 일해왔고
어떤 일이든 하게 되면 그 안에서 배울 게 있어 즐겁게 하긴 했으나
나의 노동 환경은 내가 나서서 챙기지 않으면 아무도 신경써주지 않는 그런 것이었다.
(하긴, 그러고보면 그들도 나도 자기 상황에만 민감한 건 매일반이겠구나.
'내 것 챙기기'를 넘는 눈은 어떻게 해야 길러지는 것일까.)
이번에 장원당 근무를 맡으면서 근무조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고
그 결과 개방시간을 10시까지로 줄이고 설 연휴에도 근무하던 것을 연휴 중 이틀을 쉬게 했다.
대부분은 교감선생님이 주도해서 편의를 봐준 것이었겠지만
이로 교문지키미 분과 함께 일하는 장원당 감독 선생님도
근무시간이 조금 줄고, 휴일이 늘게 되었다.
"11시 30에 막차 끊길까봐 전철 역까지 뛰어가지 않아도 되겠네."하며
지키미 분이 웃으신다.
공부하는 아이들이야 늦게까지 열고 안 쉬는 게 좋겠지만
그 아이들을 돌보는 우리에게도 사람다운 생활을 할 시간은 필요하다.
그래도 내 욕심에 바꾸자고 한 일들이 다른 분들에게도 조금의 휴식이 될 수 있어
다행이다.
<노인의 일>이라는 틀도 결국 내가 만든 像일터
이왕 맡게 되었으니 이 일을 하며 아이들과 정을 나누고
이 작은 세계에 대해 알아가며 공부하고 수행하는 시간을 보내야겠다.
노인의 일이든 젊은이의 일이든 구분 없이
노인이든 아이들이든 나눔없이 벗이 되어
그저 내가 하는 일임으로 자족할 수 있어야겠다.
어떤 일을 맡느냐보다 사실은, 내 몸을 거쳐 어떤 일이 되느냐가 중요하다.
오랜만에 새벽공기와 겨울아침의 차고도 한가한 거리는
무척이나 반가운 풍경이었다.
겨울방학하면 며칠 쉬다가 도서관 근무를 이어서 할 줄 알았는데
장원당-공부 잘 하고 말 잘 듣는 학생들이 칸막이 책상에서 조용히 공부할 수 있게
만들어놓은 학교 열람실 시설-에서 일하는 분 중 한 분이 그만두신 뒤 대신 할 사람을 못 구했다며
대신 일 해달라고 하셔서 장원당 근무를 시작하게 되었다.
격일-정확한 격일은 아니고 이틀에 한 번 꼴로 쉬기도 하고, 이틀을 내리 쉬기도 하는 평균 격일-근무에 하루 노동시간이 13시간 정도 된다. 일은 어렵지 않다. 공부하러 온 아이들 챙기고, 조용히 시키고, 공간 관리만 하면 되는 일. 셔터맨 같이.
아침 아홉시까지 문을 열어야 해서 일곱시 조금 넘어 나왔다.
겨울, 새벽이었다. 달이 하얗게 뜨고 버스가 드문드문 다니는.
입김이 숨을 타고 퍼지고, 따뜻한 커피 한 모금에 담배가 절실한.
적당히 추운 버스에서 졸다 깨다 하게 되는 겨울, 새벽.
그러고보니 새벽 공기를 잊고 산 지 오래 되었구나.
일요일엔 차가 많지 않아 여덟시 조금 넘어 압구정 역에 도착.
일요일 아침 한산한 거리도 좋다. 이제 막 밤이 물러간 아침 거리.
처음 장원당을 맡게 되었을 때 마음이 좋지 않았다.
이를테면 겨울 방학의 1~2달을 나는 압구정고등학교 도서관과 이별하는 시간
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북스타트도 정리하고, 도서관 청소도 해놓고, 아이들이
놀러오면 맞아서 이야기도 나누고....일 시키는 사람이 보기엔 별 것 아닌 일들이겠지만
나에겐 소중한 시간일 터.
그런 이별의 시간 없이 바로 도서관 문 걸어 잠그고 장원당에 '처박혀'야 하는 게 마음에 걸렸다.
주말에도 근무해야 한다는 것, 아침 아홉시까지 나와 밤 열시나 되어야 돌아간다는 것(원래는
열한시 반까지였다.)도 썩 내키지 않았으며
이미 결정을 내리고 내게 협의를 요청한 대화 방식과
한 발짝 더 뒤로 물러난 근무 조건의 악화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이 일을 맡기가 꺼려졌던 건
이 일이 <노인의 일>이란 생각 때문이었다.
호진샘이 들었다면 "아직 배가 덜 고팠구만."하고 껄껄 웃었겠지만
별로 하는 일 없이 시간이 지나면 월급이 나오는
실제로 퇴직한 어르신과 함께 일하는
<노인의 일>을 하기엔 내가 아직 젊지 않나, 하는 생각이 스스로를 괴롭힌 것도 사실이다.
그러고보면 어디에나 갈수록 조건이 나빠지는 일들이 있고
그 일들은 대개 노인이나 이주노동자와 같이 '사회 하층 계급'으로 분류되는 측이 맡는다.
학교에서 교사들은 스스로의 노동시간과 근무조건에는 민감하면서
학교의 변두리 일들을 맡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무관심이다.
정문을 지키고 장원당을 지키는 '지키미'분들이나
학교를 청소하고 식당을 청소하는 미화원, 학교 시설을 지키는 '열쇠 할아버지는
휴일 없고 밤낮없이 일하는 경우가 많다.
듣기로 정문 지키미를 하시는 분(요즘은 높은 자리는 다 영어로 직위를 말하면서
낮은 자리는 친절하게도 한글 이름을 갖다붙이는 것 같다.)은 방학도 없이
하루에 6시간 일하시면서 70만원 정도 받는다고 한다.
이우학교에 혁신학교 연수차 방문한 압구정고등학교 선생님들이
교사들의 근무시간과 월급을 따져
"결국은 교사들 쥐어짜서 만든 학교네."라고 맥락 없는 결론을 내리고,
아무리 좋은 학교라도 교사들의 기본 노동 환경을 보장하지 못하면 무의미하다고 이야기하면서
학교의 다른 노동자들의 권리와 환경에 대해 무관심한 건 모순이다.
나 역시 도서관 근무로 채용되었지만 내가 속한 연구부에 큰 일이 있을 때마다,
혹은 선생님들이 개인적으로 도움을 구하실 때, 적지 않은 일들을 맡아서 해왔다.
물론 압구정고등학교 선생님들에게 배려와 존중을 받으며 일해왔고
어떤 일이든 하게 되면 그 안에서 배울 게 있어 즐겁게 하긴 했으나
나의 노동 환경은 내가 나서서 챙기지 않으면 아무도 신경써주지 않는 그런 것이었다.
(하긴, 그러고보면 그들도 나도 자기 상황에만 민감한 건 매일반이겠구나.
'내 것 챙기기'를 넘는 눈은 어떻게 해야 길러지는 것일까.)
이번에 장원당 근무를 맡으면서 근무조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고
그 결과 개방시간을 10시까지로 줄이고 설 연휴에도 근무하던 것을 연휴 중 이틀을 쉬게 했다.
대부분은 교감선생님이 주도해서 편의를 봐준 것이었겠지만
이로 교문지키미 분과 함께 일하는 장원당 감독 선생님도
근무시간이 조금 줄고, 휴일이 늘게 되었다.
"11시 30에 막차 끊길까봐 전철 역까지 뛰어가지 않아도 되겠네."하며
지키미 분이 웃으신다.
공부하는 아이들이야 늦게까지 열고 안 쉬는 게 좋겠지만
그 아이들을 돌보는 우리에게도 사람다운 생활을 할 시간은 필요하다.
그래도 내 욕심에 바꾸자고 한 일들이 다른 분들에게도 조금의 휴식이 될 수 있어
다행이다.
<노인의 일>이라는 틀도 결국 내가 만든 像일터
이왕 맡게 되었으니 이 일을 하며 아이들과 정을 나누고
이 작은 세계에 대해 알아가며 공부하고 수행하는 시간을 보내야겠다.
노인의 일이든 젊은이의 일이든 구분 없이
노인이든 아이들이든 나눔없이 벗이 되어
그저 내가 하는 일임으로 자족할 수 있어야겠다.
어떤 일을 맡느냐보다 사실은, 내 몸을 거쳐 어떤 일이 되느냐가 중요하다.
오랜만에 새벽공기와 겨울아침의 차고도 한가한 거리는
무척이나 반가운 풍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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