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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비와 함께 반도 꽁무니를 밟았다.

소희와 사랑한지 3년이 넘어서야 처음으로 함께 몇박의 여행을 했다.

강화도 펜션을 잡아 일박을 하고 왔을 때도 차를 뒤집을 듯 비가 오더니

이번에도 여행 내내 비가 왔다.

집에서 광주로 내려갈 때는 조금만 걸어도 배낭을 맨 등이 자작하게 땀에 젖었는데.

광주의 <행복한 밥상>에서 생선구이 백반에 잎새주 한 잔 할 때만 해도,

<커피스토리>에서 수현이와 함께 차고 단 커피에 에어컨 바람을 쏘일 때만 해도

볕이 꽤나 또렷했는데도 여행 둘째날부터 비는 부슬거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내린 비는 여행 마지막 날 들른 방죽포에까지 내렸다.

방죽포를 떠나자마자 다시 나던 해.
 
우리에겐 물의 기운이 있는가?


광주에서 강진으로. 

여행을 떠나기 전에 전라남도의 어디를 갈 것인가 정하고
 
지역별 볼거리들을 인터넷을 뒤져 골라놓았다.

강진에서 들를 곳은 <영랑생가>와 <다산초당>이다.

가능한 여유롭게, 서두르지 말 것!

하나를 보더라도 천천히 돌아볼 것!

온 몸으로 그 곳의 바람을 느끼고 색과 자연을 눈에 담을 것!

여행을 준비할 때 생각해 둔 어떤 <마음가짐>이다.


-광주에서 강진가는 길의 휴게소. 휴게소 오른편은 야외결혼식장처럼 생긴 곳이었다.




영랑생가는

-바깥부터 안쪽까지 흰색과 갈색으로 깔끔하게 만든 화장실. 일렬횡대로 누워있는 대걸레

 입구부터 잘 정돈된 곳이었다.

























생가는 생가가 있는 마을의 분위기도 결정하곤 하는 모양이다.

영랑의 유명한 시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같이>를 본 딴 것인지,

생가로 가는 길 위에 있는 집들은 모두 돌담을 했다.

돌담과 넝쿨. 어디서본듯한 사진이다.

돌담으로 쌓은 우물과 소희.



영랑 김윤식은 일제시대에 시를 썼던 시인이다.

조선말을 아름답게 살려 시를 썼다는 긍정적인 평을 받는 시인.

그의 시비들이 집안 곳곳에, 위압적이지 않게 배치되어 있다.

조용히 걸으면서 시를 읽기에 좋게 꾸며 놓았다.

'내 마음 고요히 고운 봄길 위에'

대나무 사립과 흙길이 생가 보존중이라고 말해준다.

마당에 꽃과 나무가 많다.

시에 나오는 '감나무그림자'가 집 앞쪽에 있다.

보수했을 것이 분명한 생가의 흙벽





동백나무며 붉은 잎의 꽃들이 꽤나 많았는데 사진으로 남기지 못했다.

영랑의 옛집은 마당이 넓고 방칸수가 많다.

영랑은 강진에서도 꽤나 잘 살던 집안 도령인 듯하다.

일제시대의 '배운사람'으로서 영랑의 고민과 행동에 대해선 아는 바 없으나

넓은 집 툇마루에 누워 마당에 잎을 떨어뜨리는 나무를 바라보며 시를 썼을

영랑의 한가로운 마음만은 읽힌다.


영랑생가 윗길 '금서당'가는 길에서 내려다 본 강진 시내. 금서당은 찾지 못했으나 강진 시내의 아담함을 볼 수 있었다.



<영랑생가>를 나와 우리는 <다산초당>으로 향했다.

영랑생가로 차를 몰다 네거리에서 사고를 낼 뻔 하여 쫄아있었지만

다산초당으로 가는 길은 무척 한산하였다.


인터넷에서 먹고 잘 집을 뒤질 적에 <다산촌 명가>가 민박집으로 나와있었다.

단체실밖에 없는데다가 방도 덜렁 큰 거 두 칸이라서 별로 내키지는 않은 상태.

차없는 시골 구비길을 넘어 다산초당에 다다르니 차를 대는 곳부터가 다산촌명가의 주차장이다.

'명가'의 주인은 전 강진시장. 다산학에 대한 강의도 들을 수 있다고 했다.

둘이 쓸 방은 마땅한 게 없다는 이야기를 듣고 우선 초당부터 찾아간다.

비가 올 징조인지 무척 습하고 더운 날씨다.

더불어 모기도 극성이다.

신고 떠난 슬리퍼를 그대로 끌고 소희의 손을 잡고 초당 가는 산길을 오른다.

오후였음에도 불구하고 짙은 그늘로 곧 해가 떨어질 듯 하다.

다산이 유배를 와서 먹고 자고 썼다는 다산초당.

서울에서 이 구석진 강진까지,

누구의 도움을 받을 수도 없고 외로이 살아야했을 텐데,

유배를 기회삼아 저술하고 쓴 것은 역시 유배중인 형 약전에게 보냈다하니

다산의 꼿꼿한 힘이 대단하다.

다산명가에서 초당까지는 멀지 않은 길이지만

다산이 있을 때엔 그야말로 구중산골, 인적드물고 여우우는 곳이었으리라.

숲이 어두워 사진이 무척 흔들렸다. 꽤나 넓은 본당. 그 옆에 딸린 집들이 몇 채 더 있다.

다산초당

사실은 이렇게 밝은 때였다. 나무의 깊이를 알만하다.

 

다산과 연암은 같은 시대 사람이다.

다산은 조선이라는 틀 안에서 '올바른 개혁', '지도자의 윤리'를 고민했다면

연암은 조선이라는 틀 밖에서 그저 노닐었다. 노닒만으로 충분한 고민거리를 던져대면서.

다산은 강진까지 유배왔으나 왕의 총애를 잃지 않았고

연암은 왕의 경계를 잃지 않았다.

한 체제가 봤을 때 다산은 때와 사람을 잘 만나면 유용한 사람이지만

연암은 위험한 사람이다.


다산초당에 그득한 모기떼를 피해 산을 내려왔다.

다산명가 주인장의 소개로 근처에 있는, 유명하다는 <알뜰(슈퍼)민박>을 잡았다.

시설은 별 것 없지만 방이 넓고 깔끔하다.

주인장이 좀 말이 많고, 슈퍼민박이라 자꾸 슈퍼것을 사줘야 한다는 부담이 들어 조금 불편했다.

하룻밤 신세지기엔 모자람이 없었다.

주인장의 꼬임으로 저녁을 민박에서 해결할까 했으나

원래 먹고자 했던 막걸리와 파전을 먹으로 차를 몰고 다산명가까지 갔다.

동동주마시러 가기 전 민박집 윗길 산책로를 돌았다.

나무와 흙으로 된 아담한 길. 민박집에서 다산초당까지 길이 나있다.

동동주와 파전 생각하며 활기차게 걷는 소희^-^

흑백과 컬리는 느낌이 다르구나.



다산명가 민박집이 기와에 흙벽으로 화려하길래 음식값이 비쌀 줄 알았는데 아니다.

오히려 도시보다 싸다.

동동주 5천원, 파전 5천원.

동동주는 향이 깊고 맛이 맑아 머리 아플 것 같지 않았다.

파전은 두툼하고 쫄깃하여 술안주로 제맛이었다.

동동주 한 되, 김치콩나물미역줄기

쵝오!

이 김치가 입에 착 붙는다.



더 먹을까 했으나 여행 첫날이기도 하고, 장을 봐온 술과 안주가 민박집에 있어

한 되, 한 접시를 비우고 일어섰다.

바람이 살랑, 분다.


민박집에 돌아와 술과 안주를 비운 우리는

오랜만에 사랑을 나누었다.

민박집 앞 밤길을 걸으며 먹던 아이스크림보다도 부드럽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