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사람/길 위의 시간
포항에서 경주, 경주에서 부산으로-2010 봄 여행 2
"홀가분"
2010. 3. 14. 20:39
새벽 다섯시가 넘어 잠들었다가 눈을 뜨니 아홉시다.
세시간 남짓. 때에 잔뜩 절어 널부러져 있는 걸레같은 느낌으로 몸이 무겁다.
근육 사이 사이에서 담배냄새가 나는 것 같고
목구명 저 깊은 곳에서 마른 풀들이 거친 숨에 흔들리는 것 같다.
-가야지. 끄응.
밤새 어둠과 함께 바람이 흔들어대던 창을 여니
해도 없이 날은 밝았다.
바람은 줄어듦없이 그대로다.
여기서 해맞이 광장을 보고 바로 경주로 가야겠다.
바람이 이렇게 거센데다가 비까지 오니 내연산 트래킹은 다음으로 미룬다.
사진기를 손에 감고 숙소를 나섰다.
바람에 머리는 제 멋대로 엉키고 어깨에 맨 카메라 가방은 자꾸 흘러내렸다.
갈매기는 바람을 타고 낮고, 힘차게 움직였다.
갈매기...갈매기가 떼를 지어 날고 있었다. 바람을 타고, 바람이 데리고 온 듯한 갈매기떼는
다가와서 잡을 듯 하면 금새 멀어지고는 했다.
바람의 강도 혹은 농도
멋진 길 같지만 사실 길이 아닌 텃밭이다.
집들엔 대문이 없었다.
'등대분식'이나 주점' 같은 가게들이 문을 닫고 낡아간다.
시선은 밑으로 쏠려 쓰레기를 본다.
밤새 멀리 가는 빛으로 어둠을 몰던 등대들.
호미곶에 발을 내리던 때 환한 빛을 받으며 웅장함으로 사람을 놀래키는 풍력기.
갈매기를 따라 숙소를 둘러싼 마을을 한 바퀴 돌았다. 날이 흐려 사진이 예쁘게 나오지는 않으나
열심히 사진기에 풍경을 담았다.
계속, 바람이 불고 머리는 제 멋대로다.
이제는 손이 얼고 몸이 슬슬 떨려온다.
-호미곶을 보고 경주로 넘어가야겠다.
어제 밤에 본 큰 풍력기 근처가 등대박물관이 있고 해맞이 광장이 있는 곳일 것 같아서
그리로 잰 걸음을 옮겼다. 춥다.
저 앞에 "황태해장국. 아침 식사."를 벽에 써 붙인 가게가 보인다.
속도 채우고 몸도 녹일 겸 가게 문을 여니 가게 주인은 셋인데 손님은 없다.
황태해장국을 시키니 한 상이 나온다.
뜨끈하고 달콤한 국물. 비릿하고 고소한 황태살.
소주 생각이 절로 나 몸도 데울 겸 소주를 달라니 '하이트'를 준다.
천천히 해장국 한 사발과 소주 반 병을 비웠다.
눈웃음이 몇 사내쯤은 흔들어 놓았을 것 같은 주인 아주머니가 그 눈웃음으로 밥을 더 먹으란다.
-고맙습니다.
밥 두 공기에 국 한 사발. 소주 한 병.
다시 사진기를 손에 감고 해맞이 광장으로 간다.
호미곶은 포항의 호미곶이 '호랑이 꼬리 위치'에 있다고 하여 호미곶이다.
그 많은 갈매기가 어디서 왔나 햇더니, 갈매기밭이 있었다.
갈매기가 난다. 옆으로 보이는 포장은 막걸리와 안주를 파는 곳이었는데 시간이 없어서 못 들른 것이 못내 아쉽다.
해맞이 광장에는 일본인 관광객을 비롯해서 사람들이 계속 바람 사이로 드나들었다.
사람의 얼굴을 찍지 못한 게 아쉽지만, 몇 컷의 아름다룬 사진을 찍고
바닷바람에 취하여 걸은 일로 충분히 행복했다.
호미곶에서 구룡포까지 2,000원을 받고 택시를 가득채우는 기사님의 택시를 타고
구룡포에서 포항 시내로 넘어왔다.
터미널에서 공중전화로 소희와 통화를 하고
경주에 가는 버스를 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