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기행 1, 강진-순천-여수, 2009. 8. 10~13. 셋째 넷째날-순천과 여수편.
창을 여니 비가 그친 뒤의 시원한 바람이 들어온다.
오늘은 비 없이 여행을 하려나.
모텔에서 나와 낙안읍성으로 향한다.
올 봄에 아이들과 테마여행을 갔을 때 고창의 읍성에 간 적이 있다.
읍성지기 할아버지가 <낙안읍성>에도 한 번 가보라고 했던 기억이 있다.
고창읍성은 낙안읍성에 비하면 작은 편이었다.
산길을 꼬불꼬불 돌아 도착한 낙안읍성은 그야말로 읍성이었다.
입구의 성곽부터 4대문이 있는 온전한 하나의 마을.
예전 관리들이 정치를 하고 형을 집행하던 관아 건물과
예전 집을 그대로 살린 민가와 민박집들
그야말로 끊임없이 자리잡고 있는 '체험학습장'들.
작은 박물관과 주막 분위기의 식당들.
비는 다시 내리기 시작했고
우산을 받쳐든 우리는 국밥 한그릇으로 어제의 숙취를 달래고
마을을 천천히 돌았다.
비오는 평일 낮임에도 꽤 많은 관광객들이 낙안읍성에 모였다.
단체 티셔츠를 입은 아이들, 외국인들, 그리고 배낭여행 중인 청년 둘.
<배낭 여행 중입니다. 도와주세요.>라고 배낭에 써놓은 젊음.
비오는 흙길을 밟으며 오전 내내 낙안읍성을 돌고
우리는 순천 드라마 세트장으로 간다.
세트장이 크면 얼마나 크겠는가, 생각하고 있었는데
낙안읍성 입구에 세워놓은 광고판을 보니 거기도 하나의 마을이다.
다시 산길을 타 넘고 비를 따라 우리는 세트장으로 간다.
순천 시내 아파트 옆 이렇게 가상의 마을을 만들어 놓았다.
집을 지어놓은 것보다 더 놀라운 것은 '낡음의 연출'이다.
집을 지어올린다는 것은 단순히 건물 하나를 세운다는 것은 아니다. 집들의 얽힘, 골목의 배치, 모든 것이 신기했다.
아파트 단지 옆으로 세워진 하나의 마을
80년대 무대 위 80년대 포즈
예쁜 달동네 처자^-^
영화 세트장은 꽤 큰 규모다.
몇 개의 건물이 들어서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골목 골목의 디테일이 놀랍다.
판자로 벽을 삼고 그림만 그려놓은 줄 알았는데
포목점엔 천이, 책방엔 옛책이 놓여있다.
<70~80년대 달동네> 역시 실제로 좁고 가파른 골목이 있다.
달동네에 살아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 놀러와서
티비를 통해 간접체험한 경험들을 추억삼을 것이다.
다 돌아보는데 한 시간 정도 걸렸다.
오늘 저녁은 회정식이다!
숙취가 깨며 찾아온 배고픔을 달래며 오늘 마지막 장소인
<순천갈대밭>으로 차를 몰았다.
순천만까지는 멀지 않은 거리다.
넓다. 시원하다. 여유롭다.
넓게 펼쳐진 만이 주는 여유로움과
깔끔하게 지어진 건물들이 주는 쾌적함.
피곤이 올라올 즈음인 마지막 코스로 적절했다.
순천만에 조성한 갈대밭은 아직 여름이라 푸르다.
가을 갈대나 겨울 갈대도 볼만 하겠지만
여름 갈대도 그 푸르름으로 신선하다.
뻘에서 움직이는 게와 짱뚱어를 바라보는 재미까지.
순천갈대밭엔 기차도 있고 배도 있는데
기차는 비가 와서, 배는 이미 만원이라 탈 수 없었다.
그래서 걸었다.
갈대밭을 따라 길게 낸 나뭇길을 밟으며.
갈대밭 쉼터. 깔끔하고 싸다. 달걀과 고구마라테를 먹었다.
비를 맞으며 푸르른 갈대들. 갈대 밑 뻘엔 게와 짱뚱어가 산다.
강. 바람. 비. 푸른 갈대.
나뭇길이 길게 이어져있다.
갈대 옆에서 바람을 맞고 있는 이쁜이.
배 모형이 군데군데 있다. 오래전에 여기가 바다였다는듯이.
비는 계속 내렸다. 바람도 계속 분다. 계속 예쁘다.
순천만 갈대밭을 돌아본 우리는 순천을 떠난다.
피곤과 허기가 짙게 올라오기 시작한다.
순천을 벗어나 여수에 여장을 풀기로 했다.
여행을 오기 전 석환샘이 여수에 <동백회관>이 있는데
무려 30여 가지에 달하는 회가 나온다고 하여 기대를 잔뜩하고 여수로 갔다.
순천이 잘 구획된 신도시의 느낌이라면
여수는 난개발 된 구도시의 느낌이다.
여기 저기 산으로 오르는 동네가 있고
도시의 길목도 제멋대로다.
잘 구획된 신도시가 안정감을 준다면
난개발된 구도시는 무언지 아렷한 향수를 느끼게 한다.
개발의 빛과 상흔을 고스란히 간직한 여수의 도로를 타고
동백회관을 찾았다.
동백회관 바로 옆에 있는 모텔 <꿈>에서 여장을 풀고
동백회관에서 회정식을 시켰다.
'장마 끝은 회가 별로인데'
조금 불안했지만
불안은 곧 현실이 된다.
많기는 하나 회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이
젓가락을 댈 곳이 별로 없다.
함께 나온 곁두리들로 잔뜩 배를 부르니
답답하기까지 하다.
마지막 날 저녁을 거하고 맛있게 먹고 싶었으나 그러지 못해 아쉽다.
마지막 날.
오늘은 비가 걷힌다고 한다.
용인으로 올라가기 전에 바닷물에 발이라도 담그고 싶어
마지막 코스로 방죽포 해수욕장을 잡았다.
오동도에 들어가서 배도 타고 싶었으나
시간이 많지 않아 오동도행은 다음 기회로 미룬다.
오늘은 해양박물관(수족관)-방죽포해수욕장-항일암을 둘러보고
우리의 삶터로 돌아가는 날이다.
해양박물관은 외관이 허름했으나 나름대로 어종이 많고 볼거리가 알찼다.
큰바다거북을 볼 때 이상하게도 흥분된다.
상어다!
홍어가 이렇게 귀여울 수가. 둘리에 나온 꼴뚜기별 왕자가 떠오른다.
휘파람 혹은 노래. 이번 여행이 그렇게 편안하고 여유로웠다.
끝까지 비가 오던, 방죽포해수욕장. 무척이나 아담하고 사람들도 소담하다.
올라가기 전 마지막 낮술!
안주는 바닷가 통닭에 과자.
수족관을 돌고 입체영화를 보고 체험학습장을 갔다가 나오니 그새 점심참이다.
근처에 몽돌로 이루어진 몽돌해수욕장이 있다던데 해양박물관 바로 뒷편의 바다를 이름인 듯하다.
오랜만에 보는 바다.
바다에 다가가면 먼저 다가오는 바다짠내와 바닷바람이 무척 좋다.
방죽포해수욕장은 작고 아담하다.
비가 흩뿌리는데도 사람들이 적지 않게 소리를 지르며 수영을 하고 물놀이를 한다.
아침부터 빈속이어서 우리는 먹을 것부터 샀다.
통닭에 맥주.
맥주는 여행 시작에 장을 보며 사 놓은 것을 어제 모텔에서 시원하게 해 두었다.
여행의 마지막을 바닷가에서 맥주를 마시며 보낸다.
항일암은 포기하기로 한다.
오동도와 함께 다음 기회로 미뤄둔다.
비가 오고, 말복이라 올라가는 길에 대전에 들러 엄니와 동생을 만나
보신거리라도 함께 먹기로 했다.
여수에서 대전까지 가려면 시간이 많지 않다.
차라리 바닷가에서 바다보며 여유롭게 맥주를 마시다가 올라가기로 했다.
비가 조금씩 내려 우산으로 소희와 닭, 맥주를 보호한 채
닭을 뜯고 맥주를 마신다.
삼박 사일 동안 함께 걷고 보고 마시고 먹고 이야기 나눌 수 있어
평화롭고 즐거웠다.
여행이라고 뭐 별게 있겠는가.
사랑하는 사람의 손을 잡고 모든 일에서 놓여나 그저 보고 느끼는 것으로 충분하다.
방죽포의 바닷물에 발을 담그는 것으로 우린
반도의 끝자락을 떠났다.
신기하게도 여수를 떠나면서부터 다시 뙤약볕이다.
우리는 비와 바람의 자식들.
<끝>